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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6. 6世 〉26. <부정공>겸천서원고유시홀기(謙川書院吿由時笏記)
1. 문헌 목록 〉6. 6世 〉28. <부정공>절민공죽촌조선생충절비문(節愍公竹村趙先生忠節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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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부정공>절민공휘숭문묘갈명(節愍公諱崇文墓碣銘)
절민공휘숭문묘갈명(節愍公諱崇文墓碣銘) 嘉善大夫咸吉道兵馬節度使贈資憲大夫兵曹判書兼五衛都摠府都摠管諡節愍趙公招魂葬於 昇州治上沙面雲谷里兵使谷辛原法當有桓楹之刻而尚未遑焉舊有短碣而歲久磨泐殆不堪讀後 孫諸彥詢謀齊力將竪貞珉而侈大之使苗裔昶烈在玉請銘于不佞顧以淺學何敢當是役哉然先哲之忠義不可泯矣後承之誠意不可孤矣况公即我從先祖襄惠公之館甥而與梅竹軒忠文公並被慘 禍者乎義有所不敢辭者謹按公諱崇文字武伯號竹村系出淳昌以高麗門下侍中諱璋爲始祖曾祖諱佺追封府院君祖諱元吉號農隱門下侍中策勳封玉川府院君諡忠獻享淳昌武夷祠考諱瑜文科典農寺副正時佛法盛行喪禮廢壞百日即吉公與鄭圃隱獨行三年喪廬墓終制朝鮮朝徵漢城判尹不就世宗嘉之旌表曰孝子前副正之閭盖並褒其忠也享順天謙川祠妣 贈中郡夫人潭陽鞠氏生二男公序居次公有智勇膽畧早習弓馬嘗於英陵朝擢武科至兵馬節度使與妻兄忠肅公勝兪忠穆公應孚受鎭北之任威惠並臻野人不敢侵逮乙亥 端廟遜位謂其子曰事已至此惟一死而已相對涕泣遂協贊謀復 世祖丙子公之父子亦同駢命嗚呼慘矣尚忍言哉當是時公與六臣同事百折靡悔九死不變不失其所守之正曷不偉歟公之忠義武略若使久鎭邊圍則北虜不敢侵入其功豈不弘多而旋遭慘禍其可恨也已雖然公之忠義如日星之麗于天昭百代而垂光焉則亦何恨乎公哉配貞夫人昌寧成氏即判中樞院事襄惠公達生女墓合祔男哲山敎官亦被禍女適呉信孫金日濟孫男瓊亦坐謫曾玄以下不錄嗚呼文獻俱入籍沒生卒年月履歷次第俱佚不傳惟忠節至今可攷者俱載 魯陵誌東鶴招魂記及海東忠義錄輿地誌 正廟朝命旌貤贈節愍享謙川祠又配食莊陵壇及 肅慕殿庭 朝家之崇報士林之尊奉無有遺憾 正廟又傳曰貞忠大節與成勝父子一般大哉王言斯可以百世不朽矣系以銘曰淳昌之趙顯于大東洪碩相繼赫赫隆隆胚胎前光篤生哲人靺韋發跡薄試北邊足爲于城如虎如豼野人莫侵恩威並施夫何運迫 端廟遜位不忘舊主一心不貳共謀復位禍及誅戮一身雖折人紀頼植炳然丹衷死六加一千秋共傳神明可質貤贈爵諡袞褒煌煌士林爼豆蘋藻芬芳雲谷之原峙以穹石昭示不泐過者矜式 檀紀四千三百六年癸丑五月 成均館長 昌山 成樂緒 謹撰 절민공휘숭문묘갈명(節愍公諱崇文墓碣銘) 嘉善大夫咸吉道兵馬節度使 贈資憲大夫兵曹判書兼五衛都摠府都摠管諡節愍趙公의 혼을 불러 昇州治上沙面雲谷里兵使谷辛原에 안장하고 마땅히 하관틀에 새긴 법인데 아직 이루지 못했고 옛날에 세운 묘갈이 오래 되어 글자를 알아 볼 수 없으므로 後孫들이 힘을 모아 큰 돌을 갈아세우려고 昶烈과 在玉을 보내 명문을 청했다. 돌아보니 나의 천학으로 어찌 감히 이 일을 감당하겠는가, 그러나 先哲의 忠義를 민몰하게 함이 불가하고 後孫의 성의를 저버릴 수 없으며, 하물며 公은 곧 나의 從先祖襄惠公의 사위로 梅竹軒 忠文公과 함께 모진 화를 당한 자이겠는가. 의리상 사절할 수 없어 삼가 살피니, 공의 휘는 崇文이요, 자는 武伯이며 호는 竹村이고 淳昌人인데 고려 門下侍中 諱璋을 始祖로 증조 諱佺은 追封府院君이요 祖諱元吉의 호는 農隱인데 門下侍中으로 策勳封玉川府院君이며 시호는 忠獻이고 淳昌武夷祠에 배향되시었다. 아버지 휘는 유(瑜)로 文科에 올라 典農寺副正인데 때에 佛道가 盛行하므로 喪禮가 해이하여 百日탈복하는데 공이 鄭圃隱(諱夢周)으로 더불어 홀로 三년상을 지내며 여막에서 예제를 마치었다. 朝鮮朝에서 漢城判尹으로 불러도 나가지 아니하니 世宗께서 가상히 여겨 충효를 함 께 장포하여 효자 前副正趙瑜之閭라 表題하시고 順天謙川祠에 배향하였다. 어머님은 中郡夫人 潭陽鞠氏로 二男을 두셨는데 공은 次男으로 지혜와 용맹이며 담 약이 있어 일찍 활쏘기와 말 달리기를 익히더니 世宗朝에 武科하여 兵馬節度使로 妻兄 成勝과 유응부(兪應孚)로 더불어 北方방어를 맡아 위엄과 은혜가 함께 이르니 野人(북 방오랑캐)이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乙亥년에 端宗 임금이 자리를 빼앗기니 그 아들에게 이르기를, 『일이 이미 이에 이르렀으니 오직 한번 죽을 따름이다.』 하고 서로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복위를 도모하다가 世祖丙子년에 公의 父子가 함께 참육을 당하였으니 아! 슬프다. 어찌 차마 말하겠는가. 이때를 당하여 公이 六臣으로 더불어 일을 모의하여 百번 끈겨도 뉘우치지 않고 아 홉 번 죽어도 변치 않으며 지킨 바 正道를 잃지 아니 하였으니 어찌 거룩하지 않으리요. 公의 충의와 무략(武路)으로 만일 오래 변방을 지켰으면 北方오랑캐가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을 것이니 그 공이 클 것인데 도리어 참화를 당하였으니 가히 한스럽도다. 비록 그러나 公의 忠義는 해와 별같이 밝아 百대에 빛을 드리울 것이니 또 어찌 公에게 여한이 있겠는가. 배는 정부인 昌寧成氏 判中樞院事 襄惠公達生의 따님으로 묘소는 합영이고 아들 哲山은 敎官인데 같은 날 피화 하였으며. 딸은 呉信孫과 金日濟에게 출가하였으며 손자 경(瓊)은 귀양 갔었고 증현 이하는 기록 아니한다. 슬프다. 적볼(籍沒)당시에 문헌이 다 소실되어 生卒年月과 이력이 차제로 전한 것이 없고 이제 증거할 것은 오직 충절인데 노릉지(魯陵誌) 동학초혼기(東鶴招魂記) 및 해동충의록 여지지(輿地誌)에 실었다. 正祖朝에 정문을 명하고 시호를 주었으며 謙川祠에 배향하고 장릉단(莊陵壇) 숙모전정(肅慕殿庭)에 배식(配食)을 명하였으니 나라의 은총과 士林의 尊奉은 유감이 없다 하겠다. 正祖大王께서 또 전하시기를 곧은 충의와 큰 절의는 成勝父子로 더불어 일반이라 하셨으니 장엄하다. 왕의 말씀이여 가히 百세에 전하리로다. 이어 새기되, 순창 조씨가 淳昌之趙 대동에 나타나 顯于大東 넓고 큰 보필이 서로 이어 洪碩相繼 환하게 빛나고 우뚝 높았다. 赫赫隆隆 남은 빛을 이어 받어 胚胎前光 어진 사람을 낳았네 篤生哲人 무인으로 몸을 일으켜 靺韋發跡 가볍게 북방에 시험하였네 薄試北邊 족히 방패와 성이 되어 足爲干城 범 같고 비휴 같었네 如虎如豼 오랑캐의 침입이 없는 것은 野人莫侵 은혜와 위엄을 함께 베푼 때문 恩威並施 이 무슨 운명인가 夫何運迫 단종이 자리를 빼앗겼네 端廟遜位 옛 주인 생각하는 不忘舊主 一심은 변함이 없어 一心不忒 함께 복위를 모의하다가 共謀復位 그 일로 죽음을 당하였네. 禍及誅戮 자기 몸은 비록 끊겼으나 一身雖折 벼리는 길이 심었네. 人紀頼植 빛이 빛어 밝은 붉은 마음 炳然丹衷 사육신에 일을 더하였는데 死六加一 천추에 함께 전할 것은 千秋共傳 신명이 옳게 질정할 걸세 神明可質 증직하고 사시한 것은 貤贈爵諡 임금의 포장이 빛나고 袞褒煌煌 유림이 지낸 제반에 士林爼豆 마름이 향기롭네. 蘋藻芬芳 운곡의 언덕에 雲谷之原 큰 돌이 우뚝 솟아 峙以穹石 풀이지 않고 밝게 보이니 昭示不泐 지내는 자 본받을 지어다. 過者矜式 檀紀四千三百六年癸丑五月 成均館長 昌山 成樂緖 삼가 지음 後學 許永栽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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